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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경제_기자수첩] 감춰진 폭력이 드러날 때

등록일 2021년02월26일 17시47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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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경제=고상우 기자] 군 시절 후임들을 집요하게 괴롭히던 고참이 있었다. 사람 기분 나쁘게 하는 데에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것 같았다. 많은 후임들이 그를 싫어했고 피했다. 개중에는 언제 한번 손을 봐주겠다며 분개하던 이들도 있었다.

그러던 그 고참이 전역을 앞뒀을 무렵 매우 평범하고 선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보복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후임들에게 자신이 한 행동을 듣고는 무척 놀라면서, 잘못을 따져 물었을 때는 진심으로 사과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군 생활 내내 그토록 큰 괴롭힘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훗날 그 고참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가정적으로 불안정한 환경에서 자랐고, 그 역시 군 복무 중 다른 고참들에게 숱한 괴롭힘을 당해 왔다는 것을 듣게 됐다. 아마도 그는 괴롭힘을 당하던 약한 시절의 자신이 싫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당했던 만큼, 자신보다 약한 이에게 괴롭힘을 되갚아주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말이다.

유명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가 과거 `학교 폭력의 가해자였다`는 폭로가 하루가 멀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피해자들은 한때의 가해자가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다시금 고통을 토로한다. 이를 보는 대중들은 세태에 분개하며 책임을 묻는다. 반면 스타의 팬들은 자신이 믿고 응원했던 이가 그럴 리 없다며 반박한다. 폭로 자체가 허위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진상을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많은 이들이 문제의 해결을 찾는다. 성인이 된 지금이라도 가해자가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주장, 교육당국이 제도적으로 학교 폭력 차단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 스포츠 및 연예계가 선수와 지망생들의 가해 이력을 확실히 조사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온다. 모두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그러나 해결이 중요한 만큼, 문제의 원인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짐짓 평화로워 보이는 교실이 매우 폭력적인 공간이라는 사실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것은 화나는 일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억울한 일이기도 하다. 그럼과 동시에 이것은 슬픈 일이다. 때린 이는, 그만큼 맞았던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유 없이 남을 괴롭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장난삼아 때렸다는 경우에도, 과거 누군가에게 장난삼아 맞았던 경우가 많다. 오히려 자신이 장난감처럼 무력한 대상이었다는 점이야말로 극심한 자괴감을 낳고 폭력을 표출하는 요인이 된다. 폭력의 고리에서 피해와 가해는 늘 긴밀하게 얽혀 있다.

이 사회에는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가해자는 어떤 마음으로 남을 괴롭히게 됐던 걸까. 혹시 그는 다른 누군가로부터 어떤 피해를 입었을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실은 자신의 상처와 나약함을 감추기 위한 수단임을, 가해자 본인은 알고 있을까. 폭력에 대한 정답을 내리기 전에, 함께 묻고 고민해야 할 깊고 많은 질문들이 감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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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우 기자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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