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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경제_기자수첩] ‘경기가 거지같다’고 말할 자유

등록일 2020년02월21일 16시57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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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경제=고상우 기자] 탈북민들이 한국에 와서 겪는 가장 큰 문화충격으로 꼽는 것은 `어떤 권력자든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한과는 달리 한국은 `어떤 사람이나 집단도 때론 틀릴 수 있다`는 상식을 공유하는 나라다.

이를 뒷받침하듯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누구에게도 침묵을 강요해선 안 된다. 왜냐하면 모든 의견은 그 나름대로 진리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묵을 강요하는 이가 있다면, 이 억압자는 자기 생각이 `절대 틀릴 가능성이 없다(infallibility)`고 상정하고 있다는 뜻"이라고도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9일 문 대통령이 방문한 충남 아산전통시장으로 돌아가 보자. 한 반찬가게 상인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경기가) 거지같아요, 어떻게 된 거에요"라고 말했다.

민주주의 원칙에 의하면 누구도 이 상인에게 `경기가 거지같다`는 말을 못 꺼내게 막아설 수 없다. 누군가 이 상인에게 침묵을 강요한다면 `현 정부 하에서 경기가 거지같아지는 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임을 전제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비상식적 믿음을 견지하는 `누군가`가 이 사회에 생각보다 많았던 모양이다. 이 상인은 해당 발언이 공개된 이후 문 대통령 지지자들로부터 온갖 신상털이와 인신공격에 시달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휴대전화로 욕설을 듣는데 생업이 이뤄질 리 만무하다. 마치 `경기가 거지같다`는 게 정말로 어떤 건지 똑똑히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문 대통령 지지자들은 대통령을 `절대 틀릴 가능성이 없는 존재`로 상정하고는, 자신들이 원하는 답변을 내놓지 않은 타인의 입을 틀어막으려 했다. 명백히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어겼다. 심지어 시장에 직접 찾아가 먼저 의견을 물은 건 대통령 본인이었다는 사실도 망각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문 대통령의 반응이다. 지난 19일 문 대통령은 대변인을 통해 공격을 받은 상인에 대해 "안타깝다"고 말하는 데 그쳤다. "극렬 지지층에 자제를 요청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반찬가게 사장이 곤경에 처해서 안타깝다고 한 것"이라며 "이른바 `문파`들에 대한 말은 아니다"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민주주의자임을 자임한다면, 생각이 다른 시민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이 반민주적 행위임을 직시해야 한다. 또한 지지자들이 대통령 자신을 `무오류의 존재`로 떠받들고 있는 현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따라서 지지자들이 공격을 그만두도록 권고하고, 해당 상인을 비롯한 모든 시민들의 `말할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결과는 다음과 같다. 이제 대통령 앞에는 `경기가 너무 좋다`, `이렇게 풍족한 적이 없다`, `대통령은 경기를 호황으로 이끄는 완벽한 지도자` 같은 말만이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탈북민들은 더 이상 대한민국을 특별한 나라로 느끼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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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우 기자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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