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경제=고상우 기자] `4ㆍ15총선은 한일전`이라는 포스터를 볼 때마다 창피하기 그지없다. 이 포스터를 만든 이들의 믿음, 그러니까 `대한민국은 해방 이후 친일파 청산에 실패하는 바람에 친일 보수 기득권층이 70년 넘게 독점해 온 나라`라는 맹목적 신념을 가진 이들을 마주한 기분이 들어서다.
이는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는 믿음이다. 한국 내 친일세력의 경제적 기반은 토지였다. 1949년 실시된 농지개혁과 이듬해 한국전쟁을 거치며 이들의 기반은 무너졌고, 박흥식으로 대표되는 친일 자본가 집단 역시 국가 주도의 산업화 흐름과 비껴나가며 몰락했다. 모든 부자가 언제나 친일파였던 건 아니라는 뜻이다.
한국 경제가 산업화를 거치며 제조업ㆍ중화학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자리 잡은 신흥 자본가들은 이전의 기득권과 명백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현 보수 세력과 자본가를 모조리 친일파로 묶고는 이들을 일소해야 한다고 핏대를 높이는 이들은 역사의 흐름을 모르거나, 알고도 모른 채한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오늘날 맹목적 반일이 과열되면 일본과의 외교적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도 설 자리를 잃고 만다. 한일 관계의 변동에 따라 직접적 영향을 받는 유통사나 여행사 같은 기업은 물론,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과 재일 조선인의 입장은 이들의 안중에 없다.
소위 `토착왜구`라는 가상의 적을 만들어내지 않고서는 어떤 정치적 정립도 할 수 없는 진보집단의 현 세태를 보면서, 과거 `빨갱이`라는 공포로 독재를 정당화하던 군사정권이 겹쳐 보인다.
이 `겁주기 전략`은 이념과 민족이라는 도구만 다를 뿐, 실은 피해의식과 원한감정을 뒤섞은 색깔론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좌파 민족주의 역시 언제든 파시즘으로 치달을 위험이 있다.
`친일보수`라는 실체 없는 유령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 떠돌고 있다. 특정 집단을 완전히 일소해야 한다는 믿음이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자민족 중심주의로 똘똘 뭉친 정치적 수사는 일시적 자기만족 외에 어떤 것도 주지 못함에도 말이다.
더욱이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때에 이런 식의 `친일 몰이`가 횡행한다면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사회를 흑과 백으로 나누는 정치문화가 고착될 수밖에 없다. `친일보수`는 없다. `친일보수를 몰아내면 좋은 세상이 온다`는 유토피아적 맹신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도 자신의 반일 감정을 고수하고 싶은 이가 있다면, `토착왜구`라는 민족혐오성 단어만이라도 쓰지 않기를 바란다. 이 말을 거리낌 없이 쓸 때 한일 혼혈인이 어떤 상처를 느낄지 한번쯤 생각해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 AU경제(http://www.areyou.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